To Be There As They Are, 2012

to be there as they are

solo exhibition
Ye-song Museum of Arts, Seoul

글을 쓴다는 것은, 아마도 언젠가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던져서, 그에 대해 답할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질문에 대답하려고 애쓰는 것 – 옥타비오 파스

글을 쓰는 것뿐만 아니라 미술작품 역시 스스로에게 던진, 자신을 괴롭히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애쓰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작업을 해나가며 질문의 어떤 부분은 해소가 되지만 또 다른 질문들이 어김없이 던져지기에 한 작가의 작품세계는 그가 죽은 후에나 이야기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의 지층이 쌓여갈수록 그 질문에 답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되묻습니다. 그런 되물음 속에서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점차 무심해집니다. 무엇이 더 중요하다 하는 이야기들이 생명 없는 말처럼 여겨지고 흔히 사용하던 단어들도 낯설어졌습니다. 하지만 내 주변에 놓여져 있는 사물들, 상황들, 장면들, 소리들은 여전히 다정하고 중요하게 그 자리에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지난 밤 잘 잤는지 서로 묻고 함께 그릇 소리를 내며 식사를 준비합니다. 찬밥을 데우는 전자레인지 소리, 반찬그릇을 꺼낼 때 냉장고에서 나오는 찬 기운, 밥상 위에 얼룩진 국물의 흔적들, 형광등 색으로 창문에 맺혀있는 햇빛, 그리고 정적을 깨는 아들의 울음소리. 어떤 의도성도 띄지 않고 놓여진, 혹은 벌어지는 장면들과 상황들에서 편안함을 느낍니다.

고상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해서 내놓았던 답들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고 몸에 잘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해졌습니다. 그래서 의미 없게 여겨지는 일상의 것들에 집착하게 되었는데, 도리어 그 안에서 시어詩語들이 고개를 들고 오랫동안 꼬리를 물었던 질문에 실마리를 던져줍니다.

나의 대답은 웅변이 아닌 시詩였으면 좋겠고 변호가 아닌 대화이기를 바랍니다. 정확하지만 무표정한 대답보다는 차라리 모호한 한숨이고 싶습니다. 그게 더 가깝습니다. 거기 그렇게 있는 것들과 여기 이렇게 있는 나의 한숨입니다. (2012)